내가 어릴적 우리집은 조그만 단칸방에서 다섯식구가 함께 살았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주 싸웠다. 가난 때문이었다.
늦은 밤, 잠들어 있던 형과 누나와 나는 천둥같은 아버지 고함 소리에 깨어났다.
술 취한 아버지는 밥상을 집어 던졌다.
누나가 울었다. 형도 울었다.
나도 울었고 어머니도 울었다. 아버지가 무서웠다.
'아버지 잘못했어요. 아버지 잘못했어요.'
형과 나는 잘못을 빌었다. 잘못도 없이 잘못을 빌었다.
자정 넘어 싸움이 그쳤다.
우리는 울음을 그치고 불안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어머니는 떡국을 밥상에 올리셨다.
설날 아침이었다.
계란만 올린 떡국에 김치 하나가 전부였다.
찌그러진 밥상에 둘러 앉아 우리는 말없이 떡국을 먹었다.
젓가락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만 들렸다.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침묵 사이로 쿡 하는 소리가 드렸다.
떡국을 드시던 아버지가 울음을 터트리셨다.
아버지는 안으로 울음을 삼키셨다.
울음소리는 삼켜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흐느껴 우셨다.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물을 글썽였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왜 우셨을까 두고두고 생각했다.
전날 밤에 있었던 일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아버지의 고함 소리도, 어비저의 눈물도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그날의 일은 두고두고 내게 상처가 되었다.
세월이 지나, 나는 대학 입학을 앞둔 나이가 되었다.
그 사이 아버지는 고물상을 그만두시고 몇 년째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온종일 방 안에 앉아 인형 눈알을 붙이셨다.
아버지는 온종일 방 안에 누워 계시다가
저녁이면 가끔씩 밖으로 나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셨다.
그런 아버지가 못마땅해 나는 어머니에게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아버지 언제부터 일하신대요?'
'봄 오면 다시 일 시작하실 거다.'
'봄이 와야만 할 일이 있는 건가요, 뭐.'
'목소리 낮춰라.'
'어머니 혼자 너무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 그래요.'
'아버지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다.
힘든 고물상 일 하시면서 이제껏 식구들 먹여 살리셨다.
좀 쉬셨다가 날 풀리면 뭐라도 다시 시작하실 거다'
'오래 쉬셨잖아요.'
나는 불평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마라. 아버지 같은 분도 없으시다.
니 등록금 마련하신다고 아버지 요새 험한 일 하신다.'
'험한 일이요?'
'이버지 요즘 송천초등학교 신축 공사장에서 일하신다. 모른 척 해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께 죄송했다.
불현듯 다음 날, 아버지가 일하시는 곳에 가 보고 싶었다.
겨울바람은 몸시 차가웠다.
조심조심 전방을 살피며 나는 송천초등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몸을 숨기고 망치 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아버지가 보였다.
공사장 여기저기에 각목과 벽돌이 흩어져 있었다.
우람한 체구에 눈썹이 부숭부숭한 젊은 남자가 아버지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씨, 여기 좀 보슈. 이걸 못질이라고 했어요?
빨리 와서 이 못들 다 빼요.
이 양반아, 노가다 판에서 일당 받으려면 못질이라도 좀 배우고 오던가.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개나 소나 몸으로 때우면 다 되는 줄 알아요.'
쌍욕까지 해대는 젊은 사람 앞에서
아버지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곱송그리고 있었다.
그곳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자, 배고픈데 밥이나 먹읍시다!'
아버지에게 쌍욕을 했던 젊은 사람들이 인부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몇 사람은 불이 활활 타오르는 드럼통 앞에 앉아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부들은 드럼통 주위로 하나 둘 모여들었다.
프라이팬 위에서 삼겹살이 구워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추운 바람을 맞으며 못을 빼고 있었다.
한참 뒤, 아버지는 검정색 가방을 들고 작업장 한쪽 끝자리에 혼자 앉으셨다.
따뜻한 물 한 잔도 없이 아버지는 찬밥을 꾸역꾸역 드셨다.
아버지 머리카락이 겨울바람에 흩어졌다.
눈송이가 날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갈 수 없었다. 눈물이 나왔다.
양지 바른 담벼락에 기대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릴 적, 밥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말 없는 용서를 주고받으며,
구름은 구름의 풍경을 지우고 있었다.
***********************************
월간 '행복한 동행'에 연탄길의 저자 이철환님께서 쓴 글입니다.
모두다 어렵던 시절 작가의 이야기가 공감이 가는것은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비슷한 아버지의 생활상을 가진사람으로서,
많은시간이 흐른뒤 이제 자식을 가진 아비로서,
동병상린의 정이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생활환경은 나아졌지만 정신적인 환경이 더 나아지지 않는것은
마음의 여유와 배려하는 마음이 줄어들었기 때문일 것 입니다.
2008. 12. 8. - 밝은태양 -
|